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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공연의 첫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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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tist  밥
Writer 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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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서부터 집에 가는 시간이 가장 오지 않았으면 했다. 적막하고 고요한 불 꺼진 넓은 집에 들어가는 것은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잠결에 들리던 전등이 켜지는 소리에 슬며시 눈을 뜨면 가볍게 쓰다듬고 조용히 지나가는 손길에 다시 잠들곤 했다. 하지만 그뿐, 부모님이 방에 들어가면 다시 날이 선 감정이 휘몰아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설령 내가 들을까, 소리는 죽였지만 고요한 밤 그게 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 어떨 때는 그 날 선 말들이 나를 향해 꽂히기도 해, 이불을 뒤집어쓴 채 눈물을 떨어뜨리며 잠들 때도 있었다. 항상 바쁜 부모님 탓에 집은 거의 비어 있었고, 어릴 적의 집은 나를 집어삼키듯 짓누르는 기분이 들어 전혀 편하지 않았다.

 

   집이 조용한 것이 싫어 늘 집에 들어오면 노래를 틀어놓는 것이 일상이 됐다. 기분에 따라 노래의 장르를 바꾸기도 했지만, 늘 조용하고 잔잔한 노래들을 틀어놓았다. 너무 슬프지도, 너무 신나지도 않은 그런 노래들을. 너무 가라앉은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가라앉았고, 신나는 노래를 틀면 지금의 나와 별로 맞지 않은 것 같아 금방 듣는 것을 그만두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다양한 노래를 듣다 보니 나도 그런 노래들을 만들고 싶어져 작곡 공부에 매달리기도 했다. 공부와 성적에 굉장히 예민한 부모님 탓에 관련된 모든 것을 숨기느라 애를 많이 먹었지만 그래도 일상에 작은 즐거움이 되었고, 지루하고 숨이 막히는 일상에 작은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작곡하는 것이 즐거웠고, 내가 만든 곡을 내가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어딘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내가 다른 사람의 노래를 듣고 마음의 위안을 얻었던 것처럼, 그 사람들도 내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그런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도 점점 커졌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작곡에 꿈이 있다는 것을 부모님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내가 자신들이 원하는 과에 진학하여 자신들이 걸어온 인생을 똑같이 걸으리라 굳게 믿어오셨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찍 집을 나와 혼자 사는 것을 택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완고하게 반대하는 부모님과 마주치기 싫어서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그 큰 집에 여전히 혼자 남겨져 있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학생의 신분으로 갈 수 있는 집은 한정적이었다. 그나마 월세와 보증금이 저렴한, 다니던 대학이 근처에 있는 대학가. 학생들이 많은 동네였기에 골목 여기저기에는 술집과 노래방들이 줄지어 있던 곳이었다.

 

   장비가 다 학교에 있는 탓에 나는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있는 경우가 많았고, 항상 집으로 돌아갈 때면 해가 모두 지고 어두컴컴한 골목 사이사이 환한 네온사인 조명들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길가를 걸어 다니는 많은 사람은 늘 왁자지껄한 대학가 골목 사이에 여전히, 혼자. 모두 무리를 지어 내일은 없는 듯, 신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기타를 메고 터벅터벅 걸어갈 때면 세상과 동떨어진 기분을 느끼곤 했다. 여전히 집에는 반겨주는 사람이 없었고, 적막하고 조용한 집은 그대로였다. 단지, 장소만 바뀌었을 뿐.

 

   시끌벅적한 세상 속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라도 조금 덜 느끼고 싶어 조용한 동네로 이사를 했고, 그곳이 마침 묵우동이었다. 워낙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 성격에, 직업조차도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것. 가끔 버스킹이 있을 때나 미팅이 있을 때, 필요한 걸 사러 나갈 때 정도만 밖에 나가고, 거의 집에만 틀어박혀 있기 일쑤였다. 조깅을 한답시고 규칙적인 시간에 나오긴 했지만, 거의 사람이 없는 새벽 시간이었다.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에 동네 친구조차도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으니.

 

   어느 날, 작업이 잘되지 않아 너무 답답한 마음에 바람이라도 쐬러 나왔던 때. 평소에는 앞만 보고 걷기 바빠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보였다. 몇몇은 나에게 말을 걸어주기도 했다. 성별도 나이도 모두 다르지만 다정한 사람들. 처음엔 내가 같이 끼면 안 되는 게 아닐까, 하며 걱정도 했지만 그런 걱정도 잠시였다. 조금 지나니 항상 저녁을 같이 먹을 친구도, 새벽에 심심해지면 나를 불러 함께 얘기를 나누는 친구도 생겼다.

 

   가온이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직업 특성상 나와 비슷하게 생활 방식이 일정하지 않아서였을까, 새벽에 심심하면 자주 문자로 얘기를 주고받고 밖에서 만나 맥주나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동네 친구가 있다는 느낌이 이런 것이었을까, 자주 사는 동네가 달라지고, 친구가 많지 않았던 탓에 많은 것이 어색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그날도 잠시 프로젝트 연습을 하러 갔다가, 묵우동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차는 주차장에 얌전히 대어져 있었지만, 운전하기도 귀찮아 버스를 타고 다녀왔다. 어깨 한쪽에는 어쿠스틱 기타를 대충 걸쳐 메고, 언제나 그랬듯 터벅터벅 동네로 들어왔다. 문득 주머니에서 옅은 진동이 느껴져, 손을 집어넣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오늘은 연락 올 곳이 더 없었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카톡을 확인하니 핑구 이모티콘과 함께 뭐해? 라는 짧은 메시지가 와 있었다. 문자를 보내는 동안 담배나 한 대 피워야지, 하는 생각에 잠시 골목 어귀에 등을 기대고 멈춰 섰다.

 

[나 집에 가는 길. 심심해서 연락했어?]

[응, 심심해서.]

[오늘 일 안 갔어?]

[어, 오늘 쉬는 날.]

[나 공원 근처인데 잠깐 나올래?]

[갈게.]

 

   귀여운 이모티콘과 함께 이어지는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가 이어졌고, 담배를 물고 있던 입가에는 자잘한 미소가 지어졌다. 조용히 타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살짝 문질러 꺼 손에 쥐고는 다른 한 손으로 옷을 털었다. 공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아까보다 많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공원 어귀에 놓인 쓰레기통에 들고 있던 담배꽁초를 던져 넣고는 자주 만나던 공원 벤치 쪽으로 향하다가 마실 거라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려 카페로 향했다. 무엇을 살까, 고민하다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면 되겠지’ 하고는 그냥 두 잔을 시켜 캐리어에 담아 다시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 도착해 주위를 둘러보다가, ‘어디야?’ 하고 메시지를 보내려던 찰나,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서 툭, 건드니 가온이는 왜 이렇게 늦었냐며 웃었다. 나는 당당하게 커피를 들어 보이곤 하나를 가온이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곤 벤치에 기타를 내려놓고 그 옆에 나도 털썩, 주저앉았다. 따라, 가온이도 벤치에 기대앉았다.

 

“어디 갔다 와?”

“잠깐 연습 다녀왔어. 이번에 작게 공연에 참여하게 됐거든. 다른 사람들이랑 합동 공연이라 기 다 빨리고 왔어.”

“공연도 해? 힘들었겠다.”

“이거 때문에 곡 작업 다시 하고… 신곡도 하나 낼 것 같아. 괜찮은지 들어볼래?”

 

   분명 아까도 연습실에서 피드백을 받고 오긴 했지만, 비즈니스적인 피드백이 아닌 자연스러운 느낌을 듣고 싶은 것도 있었고 가온이의 앞에서라면 왠지 편하게 부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들려주면 나야 좋지~ 그럼 내가 첫 관객인 거네?”

“관객으로선 처음이지? 갑자기 긴장되네.”

 

   나는 가온이의 대답을 듣곤 주섬주섬 가방에서 기타를 꺼내 들어 무릎에 올렸다. 헛기침해 목을 가다듬고는 짧게 몇 소절을 불렀다. 설령 실수라도 할까, 손가락에 힘을 줘 코드를 짚으며.

 

“어땠어?”

“나쁘지 않은데?”

“아- 다행이다. 사실 아까도 피드백 듣고 오긴 했는데, 걱정했거든. 난 종일 이 반주만 듣고 있으니까 이제는 뭐가 뭔지도 잘 알 수 없어서.”

“곡 나오면 나한테 제일 먼저 알려주기야?”

 

   가온이는 작게 박수를 치고 웃으며 말해주었다. 어딘가에서 튀어나온 작은 만족감이 마음 깊숙이 피어올랐다. 노래가 좋다는 칭찬은 가끔 듣지만, 꾸밈없는 이런 말들이 너무 좋아서. 난 기타를 다시 가방에 집어넣고 벤치에 편하게 기댔다. 시답지 않은 일상 얘기, 직장 욕을 하기도하고 수다를 떨기도 하며 가온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슬슬 어두워지는 하늘과 은은하게 빛나는 가로등 불빛, 기분 좋은 바람과 차가운 커피. 이 모든 분위기가 좋았다. 얼마나 앉아있었을까, 사 들고 온 커피도 이제 얼음밖에 남지 않았고 슬슬 배도 고프기 시작해 나는 기타를 넣으며 가온이에게 저녁이라도 먹으러 가자고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타를 한쪽 어깨에 걸쳐 메고 저녁 메뉴 후보를 고르며 천천히 공원을 걷는데 문득, 여러 생각이 들었다.

 

   굳이 감정을 꾸미고 포장하지 않아도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기 때문이다. 여전히 집으로 들어가면 혼자였지만, 집으로 가는 길은 이제 더는 외롭지 않았다. 문밖으로 한 발짝만 걸어 나오면 웃으며 맞아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소심했던 나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어렵고, 편하게 얘기하는 것이 어색하다. 많은 사람과 웃고 떠드는 일상들이 아직도 적응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런데도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아직 본가에 들어가기는 싫고, 그 답답한 마음을 잊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괜찮다. 나는 이제 내가 편안한 사람들과 편안한 장소, 그리고 묵우동의 우리 집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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